2026년 5월 31일 -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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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2026.05.2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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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예수님이 이 설교를 하시던 때는 높은 유아 사망률과 짧은 수면, 굶주림, 질병, 국가적 굴욕의 시대였다. 따라서 청중의 대다수가 애통하는 자였다. 하지만 “그렇고 말고요! 애통하는 게 최고로 복된 일이죠!”라고 말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으리라. 이 말씀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은 무슨 생각으로 ‘애통’이란 표현을 사용하셨는지 알아야 한다. 우리는 삶의 현실로 인해 애통한다. 원치 않는 일이 제멋대로 우리 삶의 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통제 불능의 상황이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다.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복 받은 자다. 예수님은 사소한 짜증거리가 아니라 내 삶이 끝나는 것 같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말씀하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애통’이란 단어를 사용하셨으며, 이것은 처절한 고통을 경험할 때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감출 수 없을 만큼 강한 슬픔을 의미한다. 또 마음을 아리게 할 뿐 아니라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르게 만드는 슬픔을 가리킨다. 이런 슬픔에 도대체 무슨 복이 있단 말인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애통으로 가득한 삶이 아니라 애통할 일이 전혀 없는 삶을 복된 삶으로 여길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애통할 때, 우리 삶이 극도로 힘들어졌을 때, 평생에 가장 힘든 일을 당했을 때, 우리 자신의 끝에 이르렀을 때, 그때야말로 복 받은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메시지는 복이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이다. 복은 우리 안에서 나온다. 그 복은 눈물을 꽤 쏟아 내야 비로소 발견할 수 있다. 이 복은 내 꿈이 무너질 때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게 끝났을 때만 발견할 수 있다. 고난은 우리 영 안에 하나님의 평안과 임재의 복을 알고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낸다. 애통하는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의 복을 누릴 수 있다. 욥은 평안할 때보다 이해할 수 없는 큰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게 되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바로 이것이 우리가 고난의 한복판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복이다. 고난이 닥치면 우리 삶 속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다. 그 구멍을 채우던 것은 물질이었을 수도 있고 관계였을 수도 있다. 대체물이 사라지고 남은 자리가 아려올 때 하나님이 그 빈자리를 넘치도록 채워주신다. 고통스러울 때 우리는 애통한다. 애통할 때 우리는 “모든 위로의 하나님”(고후 1:3)께 위로를 받는다. 그래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고통을 하나도 허비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절대 당신을 혼자 두지 않으신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는 (마 5:4)을 이렇게 번역한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고 느끼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때에야 너희는 가장 소중한 분의 품에 안길 수 있다.” 정말 좋은 것을 잃어버렸는가? 자신의 끝에 이르면 하나님을 깊이 경험할 수 있다.
『나의 끝, 예수의 시작』카일 아이들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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