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8일 - 나는 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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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2026.10.17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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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 수 없어” 예수님은 단순한 질문을 던지셨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지만 남자의 대답은 ‘예’도 ‘아니오’도 아니다.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요 5:7). 길게 이야기했지만 한마디로 ‘할 수 없다’라는 말이다. 사람들이 ‘할 수 없다’라는 변명 뒤에 숨기를 좋아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예외는 분명히 있다. 정말로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상황도 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이 책은 자기 자신의 끝에 이르러 그리스도와 함께 진정한 모험을 시작한다는 말씀을 다루고 있다. 스스로 이 모험 속으로 뛰어들기로 선택할 수도 있지만, ‘할 수 없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분명히 있다. “이게 내 능력의 끝이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지만 그리스도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절감했어. 내 힘으로는 죄의 문제를 어쩔 수 없어. 내 힘으로는 일어나 걸을 수 없어...” 물론 여기서 끝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도움의 요청까지 나아가야만 한다. 연못가의 병자도 나름대로 노력해 봤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예수님만이 도우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신은 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부정적인 말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적인 믿음의 말이다.
마침내 도움의 필요성을 인정한다면 자신의 끝에 거의 이른 것이다. 그는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말을 했다.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진 않았다. 그는 자기 힘으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남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오래전에 그만두었을지 몰라도,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함을 인정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연못에 들어갈 수 없다는 걸 잘 알았다. 물론 그는 연못에 들어갈 필요조차 없었다. 살아계신 생명수가 찾아오셨으니 말이다. 천사가 내려와 이 물을 움직이게 만든다는 지역의 전설이 정말로 사실이라면 이 천사는 정말 무정하다. 사람들을 돕는 데는 관심도 없나 보다. 이런 천사에게 희망을 걸었다가는 38년 동안이나 코앞에서 번번이 좌절을 당할 수도 있다. 다행히 우리 예수님은 다르시다. 예수님은 대개 순수한 믿음에 치유로 보답해 주셨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는 예수님이 그 원칙을 깨셨다. 이 남자는 자나 깨나 물에 들어갈 생각뿐이었다. 순수하게 예수님의 능력에 소망을 두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는 자격이 없어”라며 고개를 가로젓지 않으셨다. 이 남자는 변명을 하면서도 스스로 자신의 끝에 이르렀음을 잘 알았다. 예수님은 이 점을 보시고 그에게 찾아와 치유해 주셨다. 예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 오디션을 보지 않아도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우리의 무능력을 그분 앞에 내려놓는 것뿐이다. 우리의 끝에 이르면 바로 그곳에서 그분이 우리를 만나 주신다. 『나의 끝, 예수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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