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23일 - 용서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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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5 2025.02.22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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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답답한 마음으로 기도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주님, 언제까지 용서해야 합니까? 언제까지 참아주어야 합니까?”...... 마음 깊은 곳에서 너무나 섭섭하고, 분노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제게 물으셨습니다. “너는 몇 번 용서받았는지 아느냐?” “나는 언제까지 너를 참아주어야 하겠느냐?”...... 주님의 말씀 앞에서 아무런 기도도 드릴 수 없어서 마음으로 울었습니다. “주여, 용서하는 것이 축복이군요! 기다려줄 수 있다는 것이 은혜이군요!”
베드로는 주님께 “일곱 번 용서하리이까?” 하였는데, 주님께서 우리를 일곱 번만 용서하신다면 우리는 절망일 것입니다. 만약 주님께서 “1,000번 용서할 것이다” 한다면 안심이겠습니까? 하루만 살아보아도 1,000번이 얼마나 작은 수인지 알 것입니다. 만 번으로 올리면 안심이겠습니까?
때때로 너무 강한 사람을 만나 힘이 든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어느 주인이 쇠망치로 밀가루를 부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어지간한 것으로는 깨뜨릴 수 없기에 쇠망치를 들고 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남편이 너무 강하다구요? 자신이 더 강한지 모를 일입니다. 아내가 지독하다고요? 자신이 오히려 더 지독한지 모릅니다. 자식이 지긋지긋하게 말을 안 듣는다고요? 어지간해서는 깨우치지 못하니 자녀를 통해서 그렇게 깨우치시는 것은 아닐까요?
죄를 짓고 용서받는 것도 어렵지만, 못지 않게 용서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절친이었던 사람이 원수가 되어 마음에 한을 품은 교인이 있었습니다. 다시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먼 곳으로 이사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건강했던 몸이 꼬챙이처럼 말랐습니다. 성격 파탄자가 되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 교회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용서하지도 않고, 용서받지도 아니하면 몸도 마음도 함께 죽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상처받은 사람이 살 길은 용서하는 길 뿐입니다. 용서했다고 상황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누구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용서는 선택사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은혜를 베풀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원한이 우리를 삼킬 것입니다. 그 원한은 그리스도인의 영혼에 독입니다.
용서하는 것이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예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려고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통에는 비할 바가 아닙니다. 용서의 사건을 통하여 우리의 영혼이 가장 크게 자라게 됩니다.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을 용서하는 과정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주님과 하나 되는 성숙함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이젠 용서하세요! 어떤 사람이 진정 회개하였는지는 그가 얼마나 용서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용서할 때 십자가의 주님과 동행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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