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5일 - 예배자를 원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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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 2026.02.12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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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예배자를 원하신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속하신 것은 우선 우리가 예배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지, 일꾼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예배를 사모하고 갈망하는 사람만이 훌륭한 일꾼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기 원하신다. 그리고 뜨거운 예배를 통해서 힘을 얻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일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이 순서를 바꾸어서 먼저 일부터 하려고 드는 아마추어가 되기를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일꾼을 갖기보다 예배자를 갖기 원하신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이 일손이 달리는 공사장의 현장 주임처럼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분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타락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이 전혀 없다고 해도 얼마든지 자신의 일을 이루실 분이시다. 하나님이 먼저 원하시는 것은 예배자이다.
하나님의 진리를 믿고 순종하는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할 때, 충심에서 우러나는 그의 가장 작은 속삭임 역시 예배이다. 만일 우리가 성령충만하고 진리에 복종한다면 우리는 어떤 수단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진리에 순종하지 않고 성령충만하지 않다면 우리의 예배는 전혀 예배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있으나 예배가 없다. 기도회에는 참석하지 않으면서, 단지 교회에서 중직자가 되려 하고, 교회 운영위원회에 참여하여 교회의 예산을 얼마나 지출해야 할지 계산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이런 사람들은 단지 교회를 운영하는 사람으로 우리는 그를 기도회에 참석하게 만들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예배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도하지 않고 참된 예배를 드리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를 운영하고 이끌고 나간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모순이다. 교회의 중직자들과 교회 운영위원회에 속한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는 교회의 현안에 대해 토론하고 투표할 자격이 없다. 우리는 대개 여자들은 기도하고 남자들을 투표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예배의 요소 중 한 가지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무한한 신뢰’이다. 오늘날 예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이런저런 모습으로 바꾸어놓았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이사야 선지자처럼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사 6:1).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존경할 수 없고, 하나님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다. 교회에서 예배가 사느냐 죽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을 존경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 2:30). 『예배인가, 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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