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4일 - 비정상적인 상태가 정상이 되어 버린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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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2026.10.03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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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적인 상태가 정상이 되어 버린 인생” 누가 도움을 원하지 않는가? 현실을 부인하는 사람이다. 베데스다 연못가의 그 남자는 하도 오래 병든 채로 살다 보니 제 발로 마을을 돌아다니고 스스로 살아가는 삶이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리지 않았을까 싶다. 시간만이 아니라 환경도 그를 변화시켰다. 그는 매일 밤낮으로 아픈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의 세상은 베데스다 연못을 둘러싼 다섯 개의 행각 안으로 완전히 축소되어 있었다. 그가 건강한 사람을 보는 것은 연례행사에 가까웠다. 그래서 서른여덟 해 동안 병으로 누워 지내는 상태가 그에게는 정상이 되어 버렸다.
서른 네 살 여인의 몸에서 100kg이 넘는 종양을 제거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왜 종양이 그렇게 커질 때까지 기다린 거냐고 물으니 저절로 없어질 줄 알고 도움을 구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런 태도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우리는 재정 상태가 저절로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신용카드 빚은 계속해서 쌓여만 가고,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는 예전처럼 돈을 펑펑 쓴다. 종양이 계속해서 자라간다. 우리는 사춘기 자녀가 알아서 정신을 차릴거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자녀는 계속해서 방탕의 길로 간다. 못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하루가 다르게 하나님에게서 멀어져만 간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가만히 보고만 있다. 종양이 계속 자라간다. 우리는 상처를 들쑤시지만 않으면 부부 사이의 문제가 언젠가는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왜 자꾸만 도움을 요청하라고 하는가? 싸우지 않는 부부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부부 사이의 문제는 남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몇 달 만에 부부는 각방을 쓰기 시작하고, 설상가상으로 남편은 같은 직장의 여성에게 호감을 느낀다. 종양이 계속해서 자라간다. 이제는 도움을 요청하는 게 어떤가?
도저히 이대로는 살 수가 없어서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든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늦었다. 상황이 나쁜 수준을 넘어 최악으로 발전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냥 살기로 한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자신을 바라보니 창피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도움을 요청하려면 굴욕을 감수해야 한다.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 자신의 문제점을 숨김없이 드러내야 한다. 그렇지만 그러기가 어디 쉬운가? 우리는 내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다. 하지만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기다릴수록 당해야 할 굴욕은 더 커져만 간다. 우리는 수치스러운 부분을 안고 살아간다. 스스로 보기에도 창피한데, 남들 앞에서 창피를 당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전전긍긍하는 삶은 참 피곤하다. 교만에는 막대한 대가가 따른다. 남들이 알면 경멸할 거라는 생각은 소리 없이 우리를 죽인다.『나의 끝, 예수의 시작』카일 아이들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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