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16일 - 나의 끝, 예수만 붙들게 하는 낮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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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6 2026.08.15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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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끝, 예수만 붙들게 하는 낮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 번째 축복은 “온유한[겸손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이다. 이번에도 우리는 이 말씀이 모순처럼 들린다. 겸손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정말로? 아무리 봐도 땅을 많이 소유한 사람들은 대기업 회장이나 연예계 스타, 스포츠 스타, 정계의 거물들이다. 이들은 겸손이란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예수님은 누가복음에서도 똑같은 가르침을 주셨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 18:14). 예수님은 올라가려면 내려가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교만은 비판이나 지적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든다. 즉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자신이 상대방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지금 당신에게 사랑의 지적과 비판을 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당신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사랑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얼굴을 붉힐 줄 뻔히 알기 때문이다.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잠 13:10). 교만은 자석처럼 갈등에 끌린다. 그리고 교만은 사소한 언쟁을 큰 싸움으로 키운다. 왜냐하면 교만한 자에게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사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과하려면 겸손이 필요하다. “내 잘못이야. 용서해 줘.” 교만한 입술에서 이런 말은 절대 나오지 않는다. 교만한 사람들은 싸움이나 언쟁에서 지는 걸 죽기보다 싫어한다. 교만이 극심한 사람은 죽을 때까지 사과하지 않는다. 그들의 사전에 “다 내 잘못입니다”라는 말은 없다. 교만한 사람은 아주 가끔 사과를 하더라도 항상 조건을 붙인다. “미안하긴 하지만...” 그러나 조건부 사과는 상대의 마음을 풀어 주지 못할 뿐 아니라 진정한 뉘우침도 아니다.
“이건 공평하지 않아”라고 말할 때 그 속에 교만이 깔려 있다. 다른 누구보다도 내가 복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불공평해 보인다. “왜 그가 승진했지?” “왜 그가 나보다 더 좋은 집에 사는 거야?” “왜 내가 아닌 저 사람이 장로가 되었지?” “왜 다들 저 사람만 칭찬하지?” 다른 이들을 축하할 줄 모른다면 필시 ‘교만의 병’에 걸린 것이다. 이미 받은 복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는 것도 같은 병의 증상이다. 자신이 모든 것을 누려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무엇에도 감사할 수 없다. 또한 교만한 사람은 험담하기를 좋아한다. 험담을 하면 자신이 더 빛나 보일 수 있다. “내가 아니라 너가 문제야.” 이것은 다른 사람의 흠을 찾아내는 시력이 좌우 2.0인 바리새인이 애용하는 표현이다. 바리새인은 주변에서 ‘문제를 찾을 뿐’ 거울로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래서 성경은 교만이 눈을 멀게 한다고 말씀한다. 우리가 자신의 교만을 보지 못하는 건 바로... ‘자기 교만’ 때문이다. 『나의 끝, 예수의 시작』카일 아이들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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