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13일 - 값비싼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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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2 2025.04.1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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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싼 은혜’를 배격하라!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는 ‘값싼 은혜’야말로 교회의 철천지 원수이며, 오늘날 우리의 투쟁은 값비싼 은혜를 얻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값싼 은혜란 싸구려 상품이요, 떨이로 팔아버린 사죄요, 떨이로 팔아버린 위로요, 떨이로 팔아버린 성례전입니다. 값싼 은혜란 교회의 창고에 무진장 쌓여 있어 언제나 손쉽게 무제한으로 제공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한마디로 값싼 은혜는 대가나 노력 없이 얻는 은혜입니다. 계산이 이미 끝났기 때문에 영수증만 제시하면 모든 것을 언제든지 공짜로 가질 수 있는 것, 그런 것이 바로 은혜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은혜를 이렇게 가르치는 교회는 이를 통해 우리가 은혜를 이미 소유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교회에서 세상은 죄를 헐값으로 덮어버립니다. 사람들은 죄를 뉘우치거나 죄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따라서 값싼 은혜란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부정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 즉 성육신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값싼 은혜란 죄인을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값싼 은혜란 참회가 없는 사죄요, 교회의 치리가 없는 세례요, 죄의 고백이 없는 성만찬이요, 개인적인 참회가 없는 사죄입니다. 값싼 은혜란 뒤따름이 없는 은혜요, 십자가가 없는 은혜요, 인간이 되시고 살아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은혜입니다.
그러면 값비싼 은혜란 무엇입니까? 값비싼 은혜란 밭에 숨겨져 있는 보물과 같습니다. 이를 발견한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기쁨으로 그것을 삽니다. 값비싼 은혜란 그리스도의 통치입니다. 이를 위해 사람들은 죄를 짓게 하는 눈을 뽑아버리기까지 합니다. 값비싼 은혜란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입니다. 이를 위해 제자들은 자기들이 가진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그물을 버리고 그분을 뒤따랐습니다. 은혜가 값비싼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를 촉구하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값비싼 까닭은 주님이 자신의 생명을 대가로 치르셨기 때문이요, 인간에게 생명을 선사하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값비싼 까닭은 죄를 나무라고 죄인을 의롭다고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값비싼 까닭은 무엇보다도 은혜가 하나님에게 값비싼 것이기 때문이요, 은혜를 위해 하나님이 아들의 생명을 대가로 치르셨기 때문이요, 하나님에게 값비싼 것이 우리에게는 값싼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은혜인 까닭은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귀하게 간직해 두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값비싼 은혜란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은혜가 값비싼 까닭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멍에를 지우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은혜인 까닭은 예수님이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값비싼 까닭은 그것이 행위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제자직으로의 부름을 무한히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제자의 길은 은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까마귀처럼 값싼 은혜라는 시체의 주변에 모여들었고, 거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직을 말살하는 독을 빨아들였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값싼 가격으로 제자직을 희생시켰습니다. 우리를 향한 값싼 은혜의 습격은 무자비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값싼 은혜라는 싸구려 상품에 현혹되어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버렸고, 그로부터 순종과 제자직을 실천할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값싼 은혜의 말씀은 그 어떤 행위의 계명보다도 더 많은 그리스도 인들을 파멸로 몰아갔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기독교는 반드시 제자직이 없는 기독교로 남게 되며, 제자직이 없는 기독교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기독교로 남게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직을 오직 은혜로부터 주어진 삶으로 이해하고, 은혜를 제자직으로 이해하는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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