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3일 - '편안한 삶'보다 '풍성한 삶'

페이지 정보

본문

  ‘편안한 삶’보다 ‘풍성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결코 우리에게 편안한 삶을 약속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다만 풍성한 삶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육신의 몸으로 태어날 때부터 불편한 삶을 사셨습니다. 하늘나라를 떠날 때 편안을 포기하셨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편안한 삶에 있지 않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보람에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데 있습니다. 어느 날 말씀을 묵상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특징은 편안한 보금자리를 떠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버리고 말씀을 따라 갔으며,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아버지 품을 떠나 애굽의 종으로 팔려 갔고, 모세는 바로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선택했으며, 다윗은 사울왕이 죽이려 하여 이곳저곳으로 피신해야 했고, 제자들은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만을 따르는 일생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의 생애는 비록 불편했지만,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이루어 드리는 풍성한 삶을 살았습니다. 주어진 환경과 육체적인 불편함이 우리의 마음과 영혼까지 불편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편안함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없는 세상적인 편안함이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불편하게 하고 곤고하게 합니다. 느헤미야는 불편한 길을 형통이라고 믿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페르시아 제국의 높은 관원으로 평생을 편하게 살 수 있었지만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물으며, 거기에 남아 있는 자들이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는 말을 듣고, 앉아서 울며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였고,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스스로 불편한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결국 느헤미야는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였고, 이스라엘의 영적 회복과 부흥을 이끌며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는 가장 의미있고 가치있는 풍성한 삶을 살았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풍성한 삶에 있습니다. 풍성한 삶은 사명을 위해 사는 삶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며 사는 삶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길이가 아닌 내용으로 평가됩니다. 길이와 속도에 잡착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삶의 내용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편안하지 않아도 풍성한 삶이라면 그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불편한 삶이 풍성한 삶으로 가는 정로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 7:13,14)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주동행 말씀 중에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스스로 불편한 자리에서 눈물로 기도하시며 사랑으로 섬겨주시는 한우리 모든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교회 김장을 위해 불편한 자리에 오셔서 힘을 다해 수고해 주신 모든 성도님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나라에 갈 때까지 서로 뜨겁게 사랑하며 좁은 문, 생명의 길을 일어나 함께 걸어갑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