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4일 - 버리지 않고 다시 빚으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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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2026.05.23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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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지 않고 다시 빚으시는 분” 당신도 나도 멀쩡하지 않다. 우리는 자선단체에서 걷어 가는 옷처럼 ‘양호한 중고품’ 수준이 아니다. 볼썽사납게 찢어진 자들이다. 깨어진 세상을 활보하는 깨어진 존재들이다. 좋은 소식은, 하나님이 깨어진 것을 온전하게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폐품으로 그분만이 하실 수 있는 작업을 하신다. 그분은 깨어진 것을 아름답게 고치는 걸 즐기신다. 물질 세상에서는 깨어진 것이 가치를 잃는다고 말한다. 유리컵이든 접시든 깨어진 건 버려진다. 흠집이 나면 그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영적 세계에서는 깨어진 것이 귀하다. 깨어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름다우심과 능력을 드러낸다. 한번은 하나님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토기장이의 집으로 보내셨다. 예레미야가 가서 보니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자,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다.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렘 18:6). 망가진 토기를 버리지 않고 다시 빚으시는 하나님.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토기장이는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또 다른 그릇을 만들었다. 같은 진흙이지만 완전히 새로운 그릇이 된다. 망가진 진흙 한 덩이가 예술로 승화된다. 그래서 나는 늘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제 깨진 조각을 당신 의견에 좋은 대로 다시 빚어 주십시오.”
문제는 우리가 갈라진 금을 솔직히 드러내 보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죽어도 약함을 보이기 싫어하는 사람이 참 많다. 우리는 실수나 흠, 상처 위에 어떻게든 덧칠을 해서 흔적을 없애려고 한다. 하지만 하나님음 ‘킨츄기’ 장인의 눈으로 우리의 깨어짐을 바라보신다. 킨츄기란 일본에서 1,500년에 걸쳐 발전해 온 도자기 보수 기술이다. 킨츄기 예술에서는 깨어진 도자기 조각을 붙여 보수하되 금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황금으로 깨진 부분을 부각시킨다. 킨츄기 도자기는 깨지기 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서 비싼 값에 팔려 나간다. 바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하시는 능력이다. 우리가 마침내 자신의 끝에 이르러 깨어진 조각을 내어놓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하게 빚어 주신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이 구절에서 ‘찔림’이란 단어는 원래 타박상, 곧 혈관이 터지면서 생긴 시퍼런 피멍을 뜻한다. 그리고 ‘나음’이란 단어는 ‘수리, 보수, 온전해짐’이란 뜻의 어원에서 비롯했다. 따라서 이사야는 그분이 깨어지신 덕분에 우리가 온전해졌다고 말한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 하나님께 쓰임을 받기 위해서는 온전해져야 한다. 이렇게 먼저 우리 ‘안에서’ 역사히시고 나서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는 게 바로 예수님의 방식이다. 『나의 끝, 예수의 시작』카일 아이들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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