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7일 - 나의 끝, 진정한 기쁨을 위한 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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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2026.06.06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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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끝, 진정한 기쁨을 위한 애통” 우리는 어떻게든 고통을 피하려고 하고, 고통을 없애는 데만 집중한다. 하지만 고통은 필연적이다. 그래서 결국 고통이 찾아오면 우리는 어떻게든 애통하는 것을 피하려고 한다. 그러다가 어쩔 수 없이 애통하게 되면 최대한 빨리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를테면 ‘온갖 즐길거리’로 고통을 느끼는 감각을 마비시킨다. 술이나 쇼핑, 일, 친구와의 수다로 고통을 달랜다. 그렇게 찡그린 얼굴을 억지로 펴 보려고 한다. 하지만 얼굴 찡그릴 일이 끊이지 않는다. 고통의 중력이 계속해서 우리를 밑바닥으로 끌어내린다. 잊을 만하면 또다시 고통이 찾아온다. 그래도 우리는 끝까지 애통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고통을 ‘극복’하려고 한다. 깨진 관계로 상한 마음이나 어리석은 선택으로 인한 뼈아픈 후회, 중병의 고통을 현실 부정이나, 남 탓을 하거나, 죄책감으로 극복하려고 한다.
고통의 터널은 빨리 통과할수록 이익일까? 조금이라도 더 오래 슬퍼하고 싶은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예수님도 우리가 고통만 당하고 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단지 우리가 고통의 그늘 아래 감춰진 놀라운 복을 발견하기 원하실 뿐이다. 이 복은 오직 ‘눈물에 젖은 렌즈’로만 볼 수 있다. 내가 아는 어느 부부가 있다. 그들은 사이좋기로 소문난 잉꼬부부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다발성 경화증 진단을 받았다. ‘소리 없는 침입자’는 아내의 몸만이 아니라 남편의 삶까지 침범했다. 질병으로 인해 부부의 삶은 급속도로 깊은 수렁에 빠졌다. 그런데 의문의 구름 속에서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혹시 이 일이 우리를 위해 일어난 건 아닐까?” 이 얼마나 놀라운 생각인가! 하루는 아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혹시 하나님이 내 몸보다 영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시려고 이 일을 허락하신 걸까요?” 어느 날 남편도 하나님께 물었다. “이것이 긍휼을 배우기 위한 수업료인가요?” 부부는 ‘하나님의 방식’에 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었다. 부부는 아내가 예전처럼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아내가 ‘새 삶’을 누리는 데 더 관심이 있으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부는 외적인 변화를 위해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내적인 변화에 더 관심을 가지셨다. 부부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달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셨다. 하나님은 인생이 던지는 돌직구까지도 우리를 그분께 가까이 이끄는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다. 애통의 눈물로 눈을 깨끗하게 씻고 나면 이상하게도 침입자가 반가운 손님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누구나 상실을 경험한다. 누구나 애통한다.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고통이 헛된 게 아님을 깨닫는다. 완전히 비상식적으로 보이는 복이 존재한다. 이 복을 찾으려면 칠흑 같이 어두운 구덩이 밑바닥까지 들어가야만 한다. 그곳에 복이 있고, 그 복은 우리의 전부를 걸 만한 가치가 있다.『나의 끝, 예수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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