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7일 - 교회엔 나오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원치 않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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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 2026.09.26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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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엔 나오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원치 않는 사람들” 실제로 성경에 있지도 않은 문구 하나가 성경 구절로 둔갑해 널리 사랑받고 있다. 바로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스로 도울 수 ‘없는’ 자들을 도우신다는 게 더 성경적이다. 철저히 무력해지고 스스로 그것을 통감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도움과 변화를 받아들인다. 자신의 끝에 이르렀을 때 거기서 우리는 우리가 내내 절실하게 필요로 했던 도움을 주려고 서 계신 하나님을 발견한다. 요한복음 5장에 등장하는 38년 동안 병들어 누워있는 한 남자 이야기가 그것을 보여준다. 무려 14,000일. 그 기나긴 세월 동안 남자는 걸어서 원하는 곳을 가지도, 필요한 것을 스스로 구하지도 못했다. 무력하게 살아온 긴 세월. 이 남자도 기적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으리라. 하지만 기적은 찾아오지 않았고 그렇게 40년이 흘러가는 사이, 남자의 영은 돌처럼 딱딱해졌다. 기도를 멈추고 소망을 버린 지 오래였다. 남자는 무력함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남자는 베데스다 연못을 둘러싼 다섯 개의 입구 중 하나의 근처에 누워 매일을 보냈다. 이 연못은 가끔씩 천사가 내려와 이 연못의 물을 움직이게 만들면 가장 먼저 그곳에 들어가는 자의 병이 치료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아직도 물이 움직일 때마다 들어가려고 애쓰고 있었을까? 그토록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예수님은 그 남자를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나?” 물으셨다. 정말 이상한 질문이다. 하지만 그 안에 뭔가 깊은 뜻이 함축되어 있는 게 아닐까? 그가 낫기를 원할까? 답은 자명해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실제로 치유를 원하지도 않으면서 연못 주위를 배회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교회에는 오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은 원치 않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래서 예수님은 문제의 핵심을 지적하신다. “너는 오랫동안 이도저도 아닌 회색지대에 갇혀 있었구나. 정말로 나아지길 원하느냐? 아니면 정녕 절망과 낮은 기대의 땅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말았느냐?” 이 남자는 40년 가까이 병에 시달려 살다 보니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미 걸인으로 먹고 사는 법을 배워버렸다.
그런데 우리 모두에게 이 남자와 같은 모습이 있다. 우리는 뻔히 더 개선할 수 있는 것을 그냥 받아들일 때가 너무 많다. “사는 게 원래 그런 거지 뭐.” 그렇게 현재 삶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라고 멋대로 단정한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이 진작 다른 삶을 주시지 않았을까? 그런 식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탓한다. 우리가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 게 하나님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니, 그분께 도움을 구할 리가 없다. 오래지 않아 우리는 현실에 적응한다. 제한된 삶이 변화보다는 덜 두렵게 느껴진다. 실망보다는 포기가 낫다. 그렇게 우리도 교회엔 나오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의 끝, 예수의 시작』카일 아이들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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