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13일 - 고아와 과부의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도우심을 받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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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46 2021.06.10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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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하나님이 고독한 자들은 함께 살게 하시며 갇힌 자들은 이끌어 내사 형통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시68:5-6). 고아와 과부는 사회적, 경제적 약자의 대명사입니다. 그리고 고독과 외로움의 대명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약하고 외롭고 가난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그들을 돌보십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해롭게 하거나 재판을 굽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고아와 과부에게 억울하게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들의 소원을 들으시고 심판하시지만, 그들을 돌보며 필요를 공급하며 그들을 사랑하는 자를 기뻐하시며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라”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과부에 대하여 많은 관심과 사랑을 나타내 보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인성 과부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의 아들을 살리셨으며, 과부가 구차한 중에 헌금한 것을 보시고 가장 많이 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과부의 억울한 원한을 풀어주시는 비유를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연약하고 외롭고 가난한 자의 하나님이시며, 그들을 돌보시며, 그들의 억울함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신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꼭 고아와 과부에게만 은혜와 자비를 베푸시고 돌보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비의 하나님으로 계속해서 존재하시고 돌보시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풍요하고 강하고 의지할 것이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난하고 연약하고 의지할 것이 없는 외로운 환경은 아픔이면서도 큰 은혜이기도 합니다. 그때 고아와 과부와 같이 연약하고 외로움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한다면 우리를 볼보시기 때문입니다. 고아와 과부는 외로움의 대명사이기 때문에 바울은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안나는 일찍 과부가 되어 팔십사 세가 되었지만 의지할 것이 없고 외롭기 때문에 살아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주야로 금식하며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기도하다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고아와 과부같이 사람이나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을 외롭게 하므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간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으로 존재하시며 돌보실 것입니다. 야곱은 광야에서 외롭게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자다가 하나님을 만났으며, 하나님은 모세와 다윗이 광야에서 외롭게 양을 치고 있을 때 만나주시고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요셉은 애굽에 종으로 팔려 고아같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와 함께 계셔서 그를 형통하게 하시고 복을 주시고 구원자로 쓰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아와 과부의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돌보심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 또한 연약하고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을 보살피며 살 때 입니다. 그리고 있어도 없는 것처럼 살고, 자기의 연약함을 알고, 거룩하게 살기 위하여 자신을 스스로 외롭게 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으로 존재하시며 돌보실 것입니다. 지금은 부요하고, 의지할 것이 많고, 즐겁게 하는 것들이 많아서 하나님의 부재 속에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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