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31일 - 외로운 진리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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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고는 진리의 길을 갈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진리대로 살려면 반드시 세상 것을 버리고 세상 문화를 멀리하고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가까운 사람들마저도 진리의 길을 가지 않을 뿐 아니라 그 길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주위를 아무리 살펴봐도 진리대로 사는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진리가 아닌 길을 가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서로 동료가 되어 함께 가지만 우리는 함께 갈 수 없을 뿐 아니라 나 혼자만이라도 진리의 길을 가야하기 때문에 진리의 길은 외롭습니다.

그뿐 아니라 자기 스스로 자신을 외롭게 하지 않고는 진리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외롭게 하심으로 진리의 길을 가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주님은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않으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막의 교부들은 홀로 있음과 침묵과 기도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이 고독한 곳으로 들어간 것은 고독을 통해서 주님과 만나고 주님과 깊이 교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고독 가운데 침묵할 때 침묵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홀로 있음은 침묵하기 위함이요, 침묵함은 침묵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는데 필수적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 시대는 홀로 있거나 침묵을 하기가 매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미세먼지가 우리 주위를 감싸므로 마음 놓고 호흡을 할 수 없듯이 수많은 소음들이 우리 영혼의 호흡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떻게 해서라도 진리대로 살기위해 스스로 자신을 외롭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외로움이란 거룩함을 위하여 지불할 대가라고 했던 것입니다.

바알 숭배가 만연했던 아합 왕의 시대에 엘리야는 너무도 외로웠습니다.

그가 바알 선지자들을 죽인 일로 말미암아 이세벨의 칼을 피하여 호렙에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 오셨습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물으실 때 그는

“내가 만군의 여호와께 열심히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홀로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에게 두 가지로 위로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는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사람을 칠천 명이나 남겨 두었다는 말씀과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해야 할 세 가지 사명을 주셨는데, 그 사명이 하사엘과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왕이 되게 하라는 말씀과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이어 선지자가 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위로는 너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을 내가 아직도 칠천 명이나 남겨 두었다는 말씀과 두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왕이 되게 하시므로 바알을 섬기는 아합의 집과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그와 함께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진리의 길을 가므로 외로운 우리에게 아직도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 칠천 명이나 있다고 가르쳐 주시고,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주시고 함께할 사람을 붙여주셔서 위로해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리의 길을 간다고 하면서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거나 스스로 자신을 외롭게 하는 일이 없다면 그것은 진리의 길을 가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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