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7일 - 진정한 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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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3 2017.12.15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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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극히 높으시며 가장 영광스러운 곳에 계신 예수님께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가장 낮은 곳에 오셨습니다.
이것은 본질이 겸손이신 주님의 모습입니다.
주님의 낮아지심은 성부 하나님을 높이시고 우리를 높이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겸손은 다른 사람을 높이기 위하여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높이려는 것 없이 자기를 낮추려는 것은 진정한 겸손이 아니며, 겸손을 위한 겸손이 될 수 있습니다.
겸손을 위한 겸손은 겸손을 통해서 자기가 겸손한 사람이라고 인정받으려는 또 다른 자기를 높이려는 교만이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겸손을 위한 겸손은 외식이며, 자의적 숭배입니다.
반대로 교만은 자기를 높이기 위하여 남을 낮추는 것입니다.
또한 교만은 사람을 높이는 것을 통하여 자기를 높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를 낮추지 않고 다른 사람을 높일 수 없음 같이, 다른 사람을 높임 없이 자기를 낮출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요셉은 겸손한 사람으로 형제들을 높이기 위하여 자기를 낮추어 말하기를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섬기겠나이다” 말했습니다.
다윗 또한 사울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의 뒤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 라고 말하며
자신을 낮추고 사울을 높여 그의 마음을 돌려놓았습니다.
이런 다윗을 하나님은 사랑하셔서 완고하고 행실이 악한 나발로부터 그가 큰 모욕을 당하여 피의 보복을 하러 갈 때,
아비가일이 다윗의 발에 엎드려 자기와 남편을 낮추고 다윗을 주여! 라고 부르며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하며
자기를 낮추고 다윗을 높이는 말과 행동을 통하여 그의 마음에 분노를 거두게 하고, 피의 보복을 막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발을 쳐서 죽게 하시므로 다윗은 자기를 낮추고 상대방을 높인 아비가일을 자신의 아내가 되게 하였습니다.
요셉이나 다윗은 모두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이므로 구원자의 모습으로 삶을 살았습니다.
이런 삶이 참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저는 겸손을 위하여 기도하거나 자신을 낮추려고만 애를 썼지, 남을 높이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겸손하지 못하고 늘 교만하게 살았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만하지 않으려고만 했지, 참 겸손을 위하여 남을 높이지 못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겸손을 위하여 기도하고 원했는데도 겸손하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남을 높이는 것 없이 겸손하려고만 했기 때문입니다.
섬김 또한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자로 오셔서 섬김의 본을 보이셨는데,
참된 섬김은 자신의 몸을 대속물로 내어줌을 통하여 남을 살리는 섬김입니다.
그런데 자신을 진정으로 내어줌 없이 남을 섬기는 것은
섬김을 통해서 자기가 도리어 섬김을 받는 것이 되기 때문에 참으로 조심해야 합니다.
자기만족을 위하여 섬기든지, 자기 유익을 위하여 섬긴다든지, 자기 이름을 드러내기 위한 섬김은 참 섬김이 아니라
오히려 이웃이 상처를 받거나 좌절에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참 섬김은 이웃을 섬기기 위하여 자신이 철저히 낮추는 일이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성탄전야에 형제교회를 초청하고 근심이 되었는데,
그것은 “나를 낮추고 형제를 높이는 참 섬김인가?” 하는 것 때문입니다.
또한 “섬긴다고 하면서 나를 높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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