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3일 - 남을 위해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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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 살아가는 것보다 복된 삶은 없을 것입니다.

세상 나라는 오직 자기만을 위하여 존재하며 살아가지만, 하나님 나라는 남을 위하여 존재하며 살아가는 나라입니다.

남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 곧 자기를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고,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남을 위하여 살아갈 때만이 참 존재의 의미를 알고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발견하고 살아가는 사람 외는 참으로 자신의 삶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믿으면서 아직도 자기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어린아이의 믿음이거나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일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주님이 우리 마음에 실제적으로 현존해 계시기 때문에 주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남을 위하여 살고자하는 마음을 주시기 때문에 우리도 남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을 위하여 살 때 비로써 자신의 존재와 삶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실제적으로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분의 통치를 받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오직 우리를 위해서 사시고,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려고 오셨기 때문입니다.

성부 하나님도 우리를 위하여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 또한 하나님의 영이요, 예수님의 영으로 오직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존재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로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셨는데 그 선한 일이 남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믿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가족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이 그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은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주님을 위하여 사는 것이 형제를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목회를 하면서도 남을 위하여 살지 않고 나를 위하여 살았습니다.

오직 우리 교회만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다른 교회는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관심조차 없이 오직 우리 교회만을 위하여 살아왔습니다.

다른 영혼들을 위하여 선교에 관심을 갖고 선교사님을 보내기도 하였지만 그것조차도 우리교회를 위하여 행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교만하고 이기적인 저에게도 징계의 아픔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살도록 해주셨습니다.

우리 교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교회가 중요하며 다른 교회를 위하여 조금이라도 섬기며 살도록 해주셨습니다.

이제야 희미하게나마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

주님이 실제로 왕이시고 주인이 되신 자의 삶이 무엇인지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다윗도 하나님 니라를 위하여 살았는데, 요나단 또한 다윗을 위하여 존재하며 그를 위하여 살므로 그 삶이 아름다웠습니다.

바울이 주님을 위하여, 그리고 다른 영혼을 위하여 살았을 때 바울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울의 보호자인 자매 뵈뵈, 바울을 위하여 자신의 목이라도 내어 놓은 브리스가와 아굴라입니다.

이들은 바울을 위하여 살므로 주님을 위하여 살았던 사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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