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23일 - 지금부터라도 비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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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38 2016.10.21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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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비워야만 채울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진리를 따라 살기가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한다고 알기도하고 말하기도 하지만 정말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 이유는 수 없는 반복 가운데 익숙해져서 한 존재가 되고 삶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익숙함이 바로 우리 존재에 깊이 뿌리를 내린 세상의 즐거움과 편리함입니다.
알면서도 멀리하거나 버리려면 허전해서 죽을 것 같아 도저히 비우기 힘든 우리의 존재와 삶의 한 부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비우지 않고는 결코 새로운 것으로 채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붙들고 있고 놓고 싶지 않는 그것이 결국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잃게 하고 빼앗아 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우리의 존재를 삼키고 있는데, 잠시 주는 즐거움으로 인하여 묵인한 결과입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며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버릴 수 있다는 오만함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어느새 그것들이 우리의 존재의 주인이 되고, 우리는 그것들의 종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된다하셨는데, 익숙함의 말을 잘 듣는 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비워야 합니다.
오랜 세월동안 수 없는 반복을 통해서 익숙해 졌다면, 비움도 수없는 반복과 오랜 시간을 통해서라도 비워야 합니다.
비움에는 버리는 것과 단절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단절 없이 비우려고만 한다면 결코 불가능할 것입니다.
비움에는 고통이 따르고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면서도 비우지 못하는 것은 대가를 지불하기가 싫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우면 평안합니다.
익숙함이 반복을 통해서 이루어 졌듯이 비움 또한 반복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어쩌면 비움을 위한 반복의 시간이 익숙함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릅니다.
한번 익숙한 것은 좀처럼 버려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그럼에도 비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거기서 벗어날 수 없고 좋은 것으로 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우지 않음으로 받을 고통의 대가보다 비움으로 받는 대가는 더욱 좋은 것으로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과 진리로 채우지 못함은 비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울 때 찾게 되고, 찾을 때 만나고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이 없는 이유는 비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릇이 준비되지 않았는데 채워주시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 그릇이 바로 비움을 통해서 나오는 목마름이고 꿈이고 소원입니다.
목마름도 꿈도 소원도 없는데 어디에다 무엇을 줄 수 있다는 말인가요?
하나님은 자신을 갈망하고 말씀을 목말라하는 자에게 만나주시고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십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비우지 않는 자에게는 결코 어떤 것으로도 채워 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삶은 비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믿음은 바로 비움에서부터 시작이 되기 때문입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의 익숙한데서 떠나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조카 롯과, 그리고 이스마엘과의 결별 없이는 이삭을 얻을 수도, 약속의 자녀로 기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삭까지 비움 없이는 하나님을 경외 할 수도, 모리아산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사랑을 알 수도 없었습니다.
그는 비우면서 채워졌고, 비운만큼 새로워졌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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