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4일 - 존재의 넉넉함은 어떻게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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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5 2017.06.02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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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넉넉함은 어떻게 오는 것일까요?
비움에서 옵니다.
비우지 않고는 결코 존재의 넉넉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존재의 넉넉함은 거룩함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세상 것을 비우고 자신을 비우면 존재가 넉넉해집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에게 유익하던 세상의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기며 버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얻게 되었는데 그것이 존재의 넉넉함입니다.
그러나 바알에게 무릎을 꿇은 자, 물질과 세상의 즐거움을 추구하고 따르는 자에게는 결코 존재의 넉넉함은 없습니다.
경건함과 거룩함이 주는 평안함과 기쁨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존재의 넉넉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내 의의 하나님이여!”하며 의를 간구하고,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을 알지어다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 지어다”하며 그는 죄를 두려워하고 의를 간구하였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마음에 참 기쁨과 평안과 안전함을 주시므로 누리게 되었는데, 그것이 존재의 넉넉함입니다.
그리고 존재의 넉넉함은 겸손한 마음에서 옵니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입니다.
이웃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는 마음인데, 그것이 곧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성숙과 성장은 위가 아닌 아래로 자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작게 여기고 아래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곳이 가장 안전하고 평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신을 ‘티끌과 같은 자’라 하였고, 다윗은 ‘죽은 개와 벼룩과 같은 자’라고 했고, 바울은 ‘죄인중의 괴수요 무익한 자’라고 자신을 낮추므로 하나님의 임재 속에 그 존재가 넉넉한 삶을 살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존재의 넉넉함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서 옵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는 하나님을 갈망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하며 묵상하고, 의지하고 순종하며 살아갈 때 옵니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가 내 명하는 대로 행하면 나의 친구라” 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친구와 대면하여 이야기 하는 것 같이 친밀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벗’이라 하시며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라고 하셨는데, 그는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포도나무와 가지를 통해서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 즉, 형제들과의 사랑의 관계를 통해서 주님과 연합하므로 절로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초대교회는 그렇게 살아가므로 존재가 넉넉한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어 세상을 구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존재의 넉넉함은 용서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에서 옵니다.
우리의 존재가 가장 궁핍하고 메마르고 곤고할 때는 용서하지 못할 때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거나 미워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통째로 사탄에게 내어주는 것입니다.
용서는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고, 자신이 악을 행하고도 뉘우치거나 전혀 깨닫지도 못하는 사람을 용서하고 불쌍히 여겨 긍휼을 베푸는 것입니다.
따라서 존재의 넉넉함은 어떤 상황이나 조건을 뛰어 넘을 때 오는 은혜입니다.
마지막으로 존재의 넉넉함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늘 기억하여 감사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이 존재의 넉넉함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형제와 교제하고 섬기고 나눔을 가질 때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여 평안을 누리게 되는데, 그것이 존재의 넉넉함입니다.
존재의 넉넉함은 주님의 뜻이며 사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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