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09일 - 깨닫는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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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주시는 은혜 중에서 가장 큰 은혜는 깨닫는 은혜입니다.

주님은 깨닫는 은혜를 통해 구원을 베풀어 주십니다.

모든 은혜와 구원과 성숙은 다 깨닫는데서 부터 시작 됩니다.

깨닫는 은혜 없이 다른 것을 주시지 않습니다.

잘 깨달아 지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큰 은혜를 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분명한 것은 내가 깨달아 진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깨달아 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잘 깨달아 진다고 해서 그것이 자신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하나님의 사랑이 깨달아 지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이 깨달아 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지고,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라는 것이 깨달아 집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심이 깨달아지고, 함께 하심이 깨달아 지고, 인도 하심이 깨달아 지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이 깨달아 집니다.

그러나 죄로 인하여 마음이 완악하여지면 깨닫는 것이 둔해집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여서 너희 마음이 완악하여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주님은 누구나 천국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에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30, 60, 100배의 결실을 맺는 밭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모든 은혜와 인자하심이 넘치게 임합니다.

베드로가 주님께 부르심을 받고 쓰임 받는 것은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말했을 때요, 심지어 주님을 저주하고 맹세하여 부인한 후에도 말씀이 생각나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 하였을 때 주님은 그를 찾아 오셔서 양을 맡기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는 세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의롭다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장 깨닫기 힘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허물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라고 했고, 주님께서도 “아버지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 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자신의 허물이 깨달아질 때 우리는 용서를 받을 수 있고, 겸손해 질 수 있고,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숙하고 새롭게 되는 것은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악한 죄인가를 깨닫는데서 부터 시작 됩니다.

깨닫게 되는 것이 바로 겸손이고 성숙입니다.

깨달아 질 때 기쁨이 오고, 은혜가 임하고, 새로운 삶과 역사가 시작 됩니다.

자신의 허물을 잘 깨닫는 사람이 버림받은 적은 없습니다.

쓰임 받지 못한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사람도 모두 우리와 같이 죄와 허물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아름답게 쓰임을 받은 이유는 잘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요 사역이고 열매입니다.

그리고 깨달아야 하는 것 중에서 다른 한 가지는 하나님이 자신과 항상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광야에서 유숙할 때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언제나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광야에서 자기의 생명을 노리는 고통의 순간에서도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하게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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