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9일 - 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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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58 2017.02.17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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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성도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간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성도들이 물질적인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의 섬김을 통해서 고난을 당하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부족한 것을 보충하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의 목회는 섬기는 목회였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섬기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섬김의 근원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고 자신의 몸을 대속물로 주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섬김이 하나님 나라에 얼마나 필수적인 요소인지를 가르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풍족한 땅에 들어가 살게 될 때에 가난한 자들이 항상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섬김을 통해서 섬김의 행복과 섬김의 영광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를 나는 고아와 과부의 하나님이라고 하셨는데 그 이유가 바로 그들을 섬기게 하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백성으로 살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절기 때에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대접하여 함께 즐거워하게 하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즐거움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그네를 영접하지 않는 것은 가장 큰 죄악으로 여겼습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 모습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을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게 되었고, 롯도 나그네를 부지중에 영접하였는데 그것이 부지중에 천사를 영접하게 되어 의인이라 일컬음을 받아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사기의 암흑시대에는 레위인이 해가 질 때에 기브아에 이르러 유숙하려 하였으나 아무도 그를 영접하여 유숙하게 하는 자가 없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들의 죄악과 그 뒤에 펼쳐질 비극을 암시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부활하신 후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과 함께 걸어가다가 그냥 지나치시려 하셨는데 그들이 강권하여 집에 모심으로 떡을 뗄 때에 부활하신 주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스데바나의 집은 성도 섬기기를 작정한 가정교회의 목자로서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바울과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케 하였는데, 이런 사람을 알아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에게 복음을 듣고 바울의 사랑받는 제자요 동역자인 빌레몬은 가정교회의 목자로 성도를 섬기므로 모든 성도가 그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고,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섬김의 나라요, 섬김으로 세워지는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가치관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전적으로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고귀한 삶, 진정으로 위대한 삶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섬김입니다.
섬김은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종이 되는 것입니다.
높지만 낮은 자를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섬기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섬김은 영광입니다.
섬김이야말로 가장 큰 능력입니다.
섬김은 가장 성령으로 충만한 자의 모습입니다.
섬김은 자아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섬김은 남을 위한 삶입니다.
섬기는 자가 가장 큰 자입니다.
섬기는 자가 가장 복을 많이 받은 자입니다.
섬기는 자가 주님을 가장 많이 닮은 자입니다.
섬김은 가장 영적인 삶입니다.
섬김은 신적인 것입니다.
섬김만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사람은 섬김을 받을 때에야 비로소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섬길 때 세워지고, 섬기는 자만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사람은 섬길 때 가장 행복하고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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