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19일 - 세속화의 원흉이 바로 편리함과 편안함을 통해 오는 영적 게으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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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을 죽음으로 이끄는 침묵의 살인자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세속화입니다.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죽어가는 가장 위험한 영혼의 살인자가 세속화입니다. 키르케고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는데 세속화야말로 영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입니다. 이 세속화가 얼마나 무서운지 지금의 유럽교회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유럽 교회를 소리 없이 집어삼킨 침묵의 살인자인 세속화는 유럽을 넘어 급속도로 전 세계로 확산되어 감염시키고 있습니다. 치료제가 없어 한 번 감염되면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고야 마는 이 세속화에 대하여 교회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거나 별 대안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얼마 안가서 교회와 성도들이 그 심각함을 보게 될 것이지만 그 때는 이미 늦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소리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세속화에 철저하게 대비하지 않으면 교회와 성도는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속화의 원흉이 바로 편리함과 편안함을 통해 오는 영적 게으름입니다. 세상 문화는 우리에게 즐거움과 편리함을 주기도 하지만 영혼을 게으르게 하여 죽게 합니다.

그런데 이런 세속화의 원흉인 즐거움 편리함과 편안함에 한 번 맛이 들면 그 누구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살아 있어도 산 것이 아니요, 믿는다 해도 실상은 머리 깍인 삼손처럼 하나님의 부재의 삶을 살며 세상과 정욕의 노예가 되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 하셨고,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하셨고, 기도로 항상 깨어 있으라 하셨음에도 세상 즐거움과 편리함과 편안한 삶에 자신을 내어주므로 신앙생활조차도 편한 것에 익숙해지므로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일은 교회가 세속화의 위험성을 알고 경고하거나 벗어날 대책을 말해 주기보다는 오히려 교회가 편리함과 편안함을 발 빠르게 제공하여 성도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교회에서 예배하는 날과 시간이 생략되거나 축소되고 있는 것입니다.

화려하고 웅장한 스크린이 필요를 다 제공해 주므로 예배에 성경을 가져오지 않을 뿐 아니라 성경을 멀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에 대한 준비나 사모함이나 헌신이 없이 편안하게 예배를 시청하다 보니 더욱 영혼이 죽게 된 것입니다. 세속화로 인한 게으름은 영혼의 호흡인 기도마저 죽게 하여 심장을 멈추게 하고 있습니다. 예배는 습관에 따라 겨우 주일 낮 예배만 드리고 집으로 가기에 바빠 성도와의 교제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헌금도 부담을 갖지 않게 하려고 예배당에 들어올 때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하거나 온라인으로 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속화는 하나님에 대한 갈망도 신앙의 열정도,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이나 사명감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종교인으로 전락시켰다는 것입니다.

편리함과 편안함으로 인한 영혼의 게으름이 죽음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게으른 것을 악하다 하셨고, 여호와의 일을 태만하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하였고,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킨다고 하였으며”, “너희 안일한 여인들아 일어나 내 목소리를 들을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딸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여자들아 일 년 남짓 지나면 너희가 황당하리니 포도수확이 없으며 열매 거두는 일이 이르지 않을 것임이라 하였습니다. 지금은 내가 살고 살리기 위해서는 오직 불편하고 힘들어도 통성으로 부르짖는 간절한 기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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