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27일 - 십자가를 지는 것은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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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말씀은 날마다 자기가 죽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뜻과 자기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십자가를 날마다 지라는 말씀은 주님의 뜻을 따르고 이웃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의 뜻을 행하거나 이웃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죽으실 권세도, 죽지 않으실 권세도 다 받으셨지만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스스로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죽으셔야 살 수 있고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값을 다 지불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속량하시기 위한 값을 넉넉하게 다 지불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는 결코 우리를 구원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누군가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예수님 외에는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우리들의 죄 값을 지불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너무도 어려웠기 때문에 주님은 기도하실 때 “아버지여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며 피와 땀을 흘리시며 간절하게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죄 값은 사망이라 하셨기 때문에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죄를 심판하셔야만 하셨습니다. 그러나 본질이 사랑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죄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고 사망에 이르게 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가 죽어야 할 대신 그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심을 통하여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진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원하여 십자가를 지시므로 우리의 죄의 값을 지불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는 것,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실 때 많은 사람이 머리를 흔들며 예수님을 모욕하며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하며 예수님을 조롱하였고,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예수님이 고통과 조롱을 당하실 때 돕지 않으시고 그 얼굴을 외면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며 처절하게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이 고통을 당할 때 침묵하시며 돕지 않으신 것은 그래야만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며 이것이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날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살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며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을 찾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고 그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지만 그 후에 부활이 있고, 구원이 있고, 영광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마저도 십자가를 알지 못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을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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