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3일 -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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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잠을 자고 있는 제자들을 보시며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하시고,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필요한 시간에 제자들은 왜 주님께서 나와 함께 깨어있어 기도하라 하셨음에도 잠만 자고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들의 눈이 피곤하였기 때문이라는 말씀은 그들이 슬픔으로 인하여 마음이 낙심되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도대체 몸이 따라주지 않아 기도할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였는데, 여기서 육신이 약하다는 것은 슬픔으로 인하여 그들의 마음이 낙심이 되므로 그들이 아무리 기도하려고 마음으로 원한다고 할지라도 몸이 따라주지 않아 기도할 수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기도하지 못한 제자들은 시험과 위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눈이 피곤하고 육신이 약하게 되면 마음으로 원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은 슬픔으로 인한 낙심 때문입니다. 마음에 깊이 자리 잡은 슬픔이 있는 한 연약함에 빠져 아무리 마음에 원한다고 할지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에 어떤 것이 깊이 자리 잡고 있는가”에 따라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눈이 피곤하고 육신이 약하여 마음으로는 비록 원한다고 할지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비단 슬픔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사랑하거나, 죄를 회개하지 않거나, 미움이나, 자랑이나,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마음으로는 원해도 몸이 따르지 않게 됩니다. 그런 것들이 마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면 말씀대로 살고자 마음에는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의 근본 원인은 자만하여 평상시에 주님의 말씀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길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말씀하실 때 제자들은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결코 우리는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 하였고, 베드로는 모두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결단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나이다. 죽는데도 따라가겠다고 맹세까지 하였는데, 이것이 말씀을 받지 않음으로 길을 잃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십자가를 앞에 두고 고민하며 기도할 때 그들은 마음이 슬픔으로 인하여 마음은 원하였지만 기도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제자들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계속도고 있습니다. 우리도 평상시에 주님의 말씀을 겸손하게 받지 않으면 육신의 정욕이나, 물질이나, 세상의 즐거움이나, 미움이나, 슬픔이나, 근심이나, 교만이나, 자랑하는 것들이 마음에 깊이 자리 잡게 되어 설교를 들어도 지식으로만 하나 둘 쌓아 둘 뿐이지 결코 필요한 순간에 기도하지 못하고, 순종해야 하는데 하는 마음은 있지만 육신이 연약하여 행하지 못하므로 큰 시험과 위기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하시지만, 말씀을 떠나 길을 잃게 되면 마음은 원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해야 되는 것은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될 것은 하게 되어 결국 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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