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0일 - 두 종류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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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저는 구원받은 후에도 죄를 짓고 잘 넘어지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 모두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것은 약하여 넘어진 죄인과 타고난 성품이나 의지에 의해서 잘 드러나지 않는 죄인의 차이일 뿐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주님을 믿은 후 타고난 성품적인 요소나 자신의 의지나 노력으로 별로 죄를 짓지 않고 이웃을 섬기며 사는 사람도 있고, 자신은 너무도 연약한 죄인임을 알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므로 아름답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종류의 사람 중에 자신이 연약하고 부족하여 하나님만을 의지하므로 아름다운 삶을 사는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지면 다시 죄악에 빠질 수 있으며, 타고난 성품적인 요소나 자신의 의지나 노력으로 죄를 별로 짓지 않고 겸손하게 이웃을 섬기며 사는 사람도 자신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상황을 만나면 감추어진 본성이 드러나 곧 죄 가운데 빠지게 됩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타고난 성품과 자신의 의지나 노력에 의하여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별로 넘어짐이나 죄에 빠지는 일이 없이 무난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반면에, 말씀대로 살려고 하지만 연약하여 자주 넘어지며 실패하는 사람은 거기서 벗어나기를 오랫동안 기도하여도 쉽게 되지 않음으로 자기가 자기 때문에 낙심하며 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신의 타고난 성품이나 의지나 노력으로 말씀을 행하며 사는 사람보다는 비록 넘어질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을 더 사랑하시고 결국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하심을 성경이 말씀해 줍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그 어떤 것보다 자신이 연약하므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사람을 기뻐하실 뿐 아니라, 그 사람에게는 실패를 과정으로 삼아 실패를 통해서 겸손하게 하시고 연약한 사람을 품어주는 사람으로 쓰시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연약함과 죄에 넘어짐의 비참함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을 진실한 마음으로 이해하거나 사랑하거나 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 자신의 정욕대로 살다가 곤고해지므로 스스로 돌이켜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강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며 겸손히 아버지께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었다”고 말하는 맏아들은 평상시 외형상 아버지를 섬겨 그 명을 어김이 없이 살아가므로 자신과 다른 사람들 보기에는 의로운 존재요,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생이 돌아와 아버지가 그를 맞아주고 잔치하는 것을 보는 순간 동생을 정죄하고 아버지를 원망하므로 그 안에 감추어져있던 죄의 본성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으며, 사람은 다 거짓되지만 하나님만 참되시다는 말씀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맏아들 같은 분들을 늘 부러워하고 나 자신에 대해서 늘 부족한 마음을 가질 때가 많았습니다. 저의 약함으로 인하여 지난날들의 삶이 부끄럽고 아프기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타고난 성품으로나 자기 의지나 노력으로 남을 잘 섬기고 아버지의 명을 어김이 없이 사는 사람을 보면 늘 부러워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다 죄인이며, 자신의 약함 때문에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 복이며,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연약함을 짊어지고 살 수 있다는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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