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29일 - 아는 것과 사는 것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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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듣고,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에 대해서 알고, 죄가 무엇인지도 알고, 죄의 결과가 무엇인지도 알고, 경건하게 살아야 하는 것도 알고, 천국에 대해서도 알고, 주님의 임재 가운데 사는 것도 알고, 어떻게 살아야 바른 삶인지도 알고, 주님의 재림과 심판에 대해서도 우리는 너무도 많이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것을 듣고 안다고 해서 은혜 가운데 경건하게 살거나, 생명 있는 믿음으로 사는 것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렇게 많은 것을 듣고, 많은 것을 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두렵기는 그렇게 많은 것을 듣고 아는 것을 사는 것으로 착각하거나, 그것으로 만족하여 더 이상 어떤 변화나 돌이킴이 없이 그냥 살아가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하나님은 이 어두운 시대에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며 편안함만을 소망하며 안주하며 살거나 그렇게 전하는 사람이 거짓 선지자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은 아닌지 고민해 봅니다. 죄로 말미암아 심판의 때가 오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여 졸지에 심판이 와서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하셨던 주님의 말씀이 지금 우리에게 해당되는 말씀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악에 빠져 살면서도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고 외쳤던 선지자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거나 자신들을 두렵게 하는 거짓말로 여겨 조롱하거나 핍박을 하였었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시대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심판 날에 특별히 구원받은 에녹과 노아와 엘리야와 오바댜와 엘리사와 레갑 자손의 믿음이 더욱 귀하게 여겨지기만 합니다. 모두가 깨닫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세상을 즐기며 살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수많은 세월동안 믿음의 길을 갔던 그들이 위대해 보이고 더욱 존경스러워 보이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인데 세속에 물들지 않고 살았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불가능했기에 하나님의 은혜의 위대함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끝까지 따르며 당신의 영감을 갑절이나 달라고 간구했던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우상 숭배가 가득했던 그 시대에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비가 올 조짐이라고는 전혀 없는 하늘을 매일 보면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그 많은 세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미련할 정도로 믿고 방주를 예비했던 노아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아들의 죽는 날이 세상을 심판하는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듣고 즉시 그대로 믿어 하나님의 심판을 외치며 하나님을 간절하게 구하며 경건하게 살았던 에녹의 삶이 요즈음 더욱 생각납니다. 모든 사람들이 바알을 숭배하므로 진실한 믿음의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서도 외로이 믿음의 길을 갔던 엘리야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고 조금이나마 공감이 됩니다. 바알을 섬기는 아합왕의 궁내 대신으로 위험한 줄 뻔히 알면서도 기근 때에 100명의 하나님의 사람들을 굴에 숨기고 양식을 먹인 오바댜의 담대한 믿음이 소망이 됩니다. 예후 왕의 변질된 믿음을 보고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낙심만 하지 않고 자손들에게 너희는 앞으로 집도 짓지 말고, 포도농사도 하지 말고, 포도주도 먹지 말라는 유언을 하여 그대로 지켜 구원을 받고 주님의 탄생에 초청된 레갑 자손의 올곧은 신앙이 더욱 위대해 보입니다. 지금은 너무 멀리 있는 일로 보이고 막연해 보이지만, 그래도 그들은 믿고 산 것처럼 저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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