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1일 - 믿음은 기다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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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기다림’ 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신뢰하고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따라서 믿음이 없이는 기다릴 수 없고, 기다림이 없는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기다림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키워 가시며 우리를 아름답게 만들어 가십니다. 기다림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끝까지 기다리는 기다림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다가도 그 기다림이 길어지거나 상황이 어려워지면 기다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자신이 속히 이루고자 하는 조급한 마음이 들 때면 기다리지 못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절대적으로 믿지 못한데서 비롯된 불신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가나안 땅에 온지 10년이 되어도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시지 않자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의 방법으로 자식을 얻어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려다 13년 동안이나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는 고통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13년의 시간은 고통의 시간이요, 죽음과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로 인하여 가정에 큰 풍파가 일어나게 되었고 결국 그렇게 얻은 아들로 인해 지금까지도 아브라함의 후손과 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이 이레를 기다리라 하였으나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려워지자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이 하나님께 번제를 드림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모세도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의 힘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려다가 광야로 도망하여 40년 동안이나 기다림의 훈련을 해야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기다리지 못했기 때문이요, 불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우리를 기다리게 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을 응답해 주시는 것보다 우리 자신이 약속을 받기에 합당한 존재로 만들어지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다림은 낭비가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지는 너무나 귀중한 시간이요,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무대를 만드는 시간입니다. 만약 우리가 만들어지지 않고 응답을 주신다면 우리는 얼마 못가서 주신 응답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버리든지, 하나님을 자신의 응답의 수단으로만 여기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들어질 때 우리의 응답은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이며, 응답보다 더 좋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존재와 삶이 사역이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일하는 것만이 사역이 아니라 기다림이야말로 우리가 만들어지는 가장 큰 사역이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기다림을 통해서 우리의 자아가 부서지고, 우리의 조급함이 깨어지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품이 만들어지는 영광스러운 시간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다” 하였습니다. 믿음은 끝까지 신뢰하고 기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또 다른 기다림은 내가 앞서서 무엇을 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앞서 행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동안 광야에서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은 구름 기둥이나 불 기둥이 움직일 때는 바로 진행하였으나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한 달이나 일 년이나 더 많은 날 동안이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삶의 주체는 자신들이 알아서 결정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그렇게 훈련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시간이 우리들의 시간보다 항상 옳기 때문입니다. 빨리 가나안에 들어가기보다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기다림의 훈련을 통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영구히 살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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