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13일 - 길이 막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번 성탄절에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하는 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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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성탄절에는 모든 것을 중지하고 어느 때보다도 조용하게 보내야 한다는 현실 앞에 왠지 모르게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런 상황에서도 주님이 오심을 감사하며 “어떻게 하면 다른 때보다 의미 있는 성탄절을 보낼 것인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마음만 있다면 외모는 비록 초라할지라도 더욱 뜻깊은 성탄절을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길이 막히면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길에는 어느 때나 길이 막히지 않는 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길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길이 막혔다고 하더라도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면 생각지도 못한 좋은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환경만 탓하고 낙심하고 있는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참 신앙은 길이 막혔을 때에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사시대의 길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때에도 모든 길이 막힌 것처럼 보이는 나오미와 이방 여인 룻을 통해서 새로운 길을 여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한나의 태를 막음으로 그가 고통 가운데 있었지만 한나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새로운 길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400년 동안 하나님의 침묵가운데 제국들의 지배를 받는 가장 암흑의 시대요, 길이 보이지 않는 때에도 하나님은 가장 영광스러운 새 길을 여셔서 요한과 예수님을 보내심으로 새 길을 여셨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 핍박이 있을 때도 하나님은 새로운 길을 여셨는데 그 길은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길이었습니다. 성령께서 바울이 아시아로 가려던 길 뿐만 아니라 그가 가려던 모든 길을 막으셨지만 바울에게 드로아에 길을 여시고, 거기서 누가를 만나고, 마케도니아의 새로운 길을 여셨기 때문입니다. 삭개오는 주님을 만나는 길이 막히자 뽕나무에 올라 주님을 만날 길을 만들었고, 중풍병자를 메고 온 네 사람은 길이 막히자 지붕을 뜯어 길을 내므로 주님은 그들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길이 막혔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길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이 계시는 한 우리에게 포기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길이 막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번 성탄절에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하는 길은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베들레헴 구유에 계신 예수님을 만나러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은 가장 낮은 곳, 가난하고 소외된 구유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베들레헴의 구유는 가난한 자, 소외된 자를 찾아 돌보는 것이 주님에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장 소외되고 외로운 이웃은 누구일까요? 첫 번째 생각나는 이웃은 우리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님들이었습니다. 선교지를 떠나 이곳에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데도 갈 수 없는 소외된 이웃이 선교사님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성탄절에 선교사님들을 초청해서 위로하고 격려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로 인하여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는 우리 형제들을 찾아가 위로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탄 이브에 예배하는 길이 막혀 비록 20명만 모이는 초라한 예배지만 그 가운데서도 우리의 작은 몸짓으로 주님께 경배를 드렸으면 합니다. 주님은 마르다에게 많은 일로 분주하거나 고민하지 말고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길이 없으면 어떤 경우에든지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냥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은 성경적이지도 않고, 지금까지 우리가 해왔던 신앙 정서에도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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