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7일 -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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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91 2020.09.2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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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재난의 때에 하나님의 심판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경건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미래적이면서도 또한 현재적입니다. 여기서 미래적이란 말은 심판이 개인의 종말이나 우주적인 종말에 있기 때문이며, 현재적이란 말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벨릭스 총독 앞에서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전하였고, 주님도 심판을 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심판의 기준은 “선을 행하였는가, 악을 행하였는가?” 하는 것인데, 여기서 행한다는 것은 단순히 행동이 아니라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따르느냐?” 하는 것을 행하는 것이라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롬 2:6-8)에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라고 하셨는데,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것이 바로 주님과 말씀을 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과 말씀만이 썩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원하신 왕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토록 있을지어다” 하였고,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으니라” 하였으며, 또한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도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하실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하시므로 심판의 기준이 “주님과 말씀을 원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인데, 이것은 곧 “주님의 말씀을 받느냐, 받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하였는데, 여기서 악을 행하는 기준 또한 “불의를 따르며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는 사람이라” 하시므로 그 사람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갚으신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의 기준은 행동이 아니라, “주님을 구하고 진리를 구하며 사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이며, 또한 사람이 무엇을 구하며 산다는 것은 “무엇을 따르며 사는가?” 하는 행동으로 이어지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갚으신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무엇을 구하며 사느냐?” 하는 것은 곧 “그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과 “어떤 행동을 하며 살아가느냐?” 하는 것을 결정하는 시작이고 과정이며 결과이기에 그것을 선과 악을 행하는 행동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원하고 구하는 것이 그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을 나타내며, 그 자체가 행동이며 과정이요 결과인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큰 죄는 주님을 구하지 않거나, 주님에 대하여 무관심하거나, 주님 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구하고 말씀을 구하며 사는 것이 선이고, 선한 존재가 되는 것인데 주님과 말씀이 선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구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만약 우리가 주님과 말씀을 구하며 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썩어질 것을 구하며 사는 것으로 썩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외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현재도 보응을 하시는데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는 환난과 곤고함으로 갚으시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으로 갚으십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 마음에 환난과 곤고함이 있다면 악을 행한 보응이며, 썩어질 것을 구하여 썩어질 것에 종노릇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은혜와 평강이 있다면 주님과 말씀을 구한 보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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