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2일 - 긍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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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88 2017.02.14 10:32
본문
긍휼을 행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긍휼이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하십니다.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한다고 말씀합니다.
긍휼이 없는 심판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일인가?
그러나 심판에 긍휼이 있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긍휼이 얼마나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기에 심판을 이기고 자랑한다고 하셨는가?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긍휼이 없는 심판을 하신다면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그가 긍휼 없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긍휼이 있는 심판이 있는데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의 긍휼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긍휼을 행한다는 것은 불쌍히 여기는 것으로 상대방의 처지를 깊이 이해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슬픔을 느낄 뿐 아니라, 실제적으로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긍휼은 어떤 상황과 누구에게도 조건을 정하지 않고 베푸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고 긍휼은 사람의 죄를 무조건 덮거나 묵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미워하되 연약하고 미련하여 악에 빠져 있는 사람을 불쌍하고 안타깝게 여겨 그를 구하기 위하여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긍휼 없는 공의는 누구도 살 수 없고, 살릴 수 없지만 공의 없는 긍휼 또한 피차에 멸망을 가져 옵니다.
긍휼은 신적 속성으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알 수 있듯이 강도 만난 자를 측은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로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주막 주인에게 비용을 주며 돌보라 하고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므로 강도 만난 자를 불쌍히 여겨 그를 살리려 자신이 대가를 지불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긍휼입니다.
강도를 만나 거반 죽게 된 우리를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서 죄에서 구원하여 주실 뿐 아니라, 우리를 그대로 받아 전 삶에 모든 실수와 죄까지 책임져 주시는 한량없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같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았기에 우리도 긍휼을 베푸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긍휼을 행하지 않으면 우리도 긍휼이 없는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긍휼은 없고, 공의만 있는 삶을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공의만 가지고 대하셨다면 살아남을 자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를 굳게 세우시기 위하여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 스스로 희생의 대가를 지불해서 공의를 충족시키므로 우리를 긍휼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나타낸 하나님의 참 모습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은 우리가 죄를 범할 때 즉시 처벌하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기사 오래 참으시고 스스로 깨닫고 돌이키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행하여 그를 살릴 수만 있다면 어떤 대가도 지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실수나 잘못을 알면서도 비판하거나 제거하려 하지 말고 용납하여 스스로 깨닫도록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강한 자는 긍휼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당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하였습니다.
다윗은 사울과 반역자인 압살롬까지도 긍휼히 여겼고,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애통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압은 긍휼이 없는 행동을 하여 자신이 결국 긍휼이 없는 심판으로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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